모순의 미학
우리가 잘 아는 세종대왕 때의 정승 황희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고려 말에 태어났는데, 정실 소생은 아니었고, ‘얼자’(양반 아버지와 천민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을 뜻함) 출신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놀랍게도 조선이 개국되면서 도승지와 육조판서,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을 모두 지낸 인물이었는데, 총 24년을 정승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대통령 비서실장, 행정 각부의 장관, 국무총리까지 지냈다는 말입니다. 국정 전반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이 해박하였습니다. 강직, 분명, 정확한 스타일의 인물로 추진력과 결단력이 필요한 업무에 능하였습니다. 그는 매우 강직하여 파직과 유배당한 경력도 여러 번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당대에 알아주는 군자였다고 합니다. 범죄 사건에도 너그럽게 처리하는 대범함이 있었습니다.
한 번은 황희 정승이 집에 있을 때, 한 하녀가 찾아와 하소연을 합니다. 그 말을 들었던 황희는 “네 말이 옳구나”라고 합니다. 그러자 반대 입장을 가진 다른 하녀가 찾아와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자, 황희는 이번에도 “네 말이 옳구나!”라고 말합니다. 이를 보던 부인이 답답하여 “두 하녀가 반대 이야기를 하는데, 둘 다 옳다 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한 사람이 맞으면 한 사람이 틀린 거지요!”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자 황희는 “당신 말도 옳소!”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서양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는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됩니다. 그들의 눈에 비친 황희 정승은 ‘줏대 없는 노인’, ‘사리 분별이 없는 노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상호 모순된 세상마저도 포용할 수 있는 도량이 넓은 큰 사람의 이야기로 받아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모순에 대한 동양인과 서양인의 태도 차이입니다. 칼럼니스트 김용성(휴잇 어소시엇츠 상무, 전 미국상무부 근무)은 “서양인은 모순에 대해 반사적으로 거부감을 느끼지만, 동양인은 모순을 쉽게 수용하며 그로 인해 종종 비범한 의사결정을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모순에 대한 동서양의 인식을 아래와 같이 잘 설명하였습니다.
“서양인들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형식 논리에 기반을 둔 논쟁에 익숙하기에 논리적 모순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입니다. 이것이 맞으면 다른 것은 틀려야 합니다. 하지만 동양인들은 음양과 같은 모순이라 할지라도 이것이 무조건 반대되는 것만은 아니며, 서로를 보충하고 있다고 봅니다. 서로에 대한 긍정이 오히려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이죠! 형식 논리는 고대 그리스의 토론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는 개인의 자유를 강조했으며, 사람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펴고 논쟁하는 문화를 갖고 있었습니다. 논쟁에 참가한 사람들은 제 3자가 자신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상대방의 의견을 배척하게 만들기 위해, 자신의 의견이 옳다는 객관적 증거를 제시하거나 상대방 의견에 논리적 문제가 있음을 밝혀야 했습니다. 이를 위해 그리스인들은 어릴 때부터 모순이 없고 형식논리상 흠잡을 데 없는 주장을 펴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반면 동양인들은 개인의 자유보다는 전체의 통합을 강조하는 문화를 형성해왔습니다. 개인 의견에 차이가 있더라도 당장 그 자리에서 시시비비를 가리기보다는 포용하는 생활 방식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모순적인 상황에 대해서도 섣부른 판단을 미루고, 상황을 더 크게 보는 사고방식을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음양은 역설적으로 상대가 있기에 존재합니다. 음과 양은 고정되지 않고 변하며, 따라서 사람은 어느 한 극단을 취하기보다는 중용을 지켜야 합니다. 새옹지마 이야기도 인생에는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번갈아 나타나는 것이니, 어느 한쪽으로 마음이 쏠리지 않도록 중용을 지키라는 지혜를 가르칩니다.“